세계 등산의 변천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1336년 프로방스의 몽벤투(1920m)에 올라가, 아버지에게 편지로 고된 등반 가운데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1574년에는 세계 최초의 등산기술서가 취리히대학 지물러 교수에 의해 출판되었다. 18세기 중엽에는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에 큰 관심을 가졌던 제네바의 자연과학자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가 몽블랑 등반자에게 상금을 걸어, 1786년 프랑스 샤모니의 의사 파카르와 수정채취인 팔머가 정상에 올랐다.
이리하여 알프스 스포츠등산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 알프스 제2의 고봉 몬테로자(4634m)를 1855년 영국의 스마이스 일행이 등정하는 등 영국 등산가를 중심으로 미등의 거봉들이 잇따라 정복되었으며, 1857년에는 세계최고(世界最古)의 등산회인 알파인클럽이 영국 런던에서 발족했다.
알프스의 황금시대는 마터호른(4478m)의 등정으로 끝났으나 영국의 판화가 에드워드 휨퍼는 1865년 드디어 그 정상에 섰다. 그러나 하산 도중 로프가 끊어져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한때 등산금지론까지 나왔으나, 등산자의 눈은 알프스에서 카프카스·안데스·히말라야 등으로 옮겨갔다.
1897년 남아메리카의 아콩카과(6960m)가 영국의 피츠제럴드대(隊)에 의해, 1910년 알래스카의 매킨리(6187m)가 미국의 테일러 일행에 의해, 1889년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가 독일의 마이어 등에 의해 등정되어, 남은 것은 히말라야 카라코룸·힌두쿠시 등 7000, 8000m의 고봉들이었다.
1936년 틸먼 등 영미합동대의 난다데비(7817m) 등정이 제2차세계대전 전의 최고기록이다. 제2차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M. 에르조그대(隊)가 1950년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하여 히말라야의 황금시대가 시작되었고, 1953년 영국의 J. 헌트대(隊)가 에베레스트(8848m), 독일대가 낭가파르바트, 1954년 이탈리아대가 K2, 오스트리아대가 초오유, 1955년 프랑스대가 마칼루, 1956년 일본대가 마나슬루(8125m), 스위스대가 로체, 오스트리아대가 가셰르브룸Ⅱ, 1957년 오스트리아대가 브로드피크, 1958년 미국대가 히든피크, 1960년 스위스대가 다울라기리, 1964년 중국대가 고사인탄을 등정하여 세계의 8000m급 거봉의 초등정이 끝났다.
1960년대에는 일단 정복된 산이라도 더 험난한 루트에 의한 등반, 1970년대부터는 단독등반에 더 많은 가치가 인정되었고 위험도가 높은 등산이 많아졌다.
한국의 등산역사
한국은 고대부터 숭천숭산사상(崇天崇山思想)을 지녀왔으며 여기에서 등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의 강림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산에 있는 사찰은 산이 신앙의 수련장임을 뜻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BC 30년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 온조(溫祚)와 비류(沸流)가 부아악(負兒嶽;지금의 북한산 인수봉)에 오른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한편, 산은 삼국시대부터 가사문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근대 이전의 등산
등산의 시초는 신라 화랑도의 활동에서 볼 수 있으며, 대상지역은 신라 전국토였다. 혜초(慧超)가 723∼727년에 중앙아시아지역인 파미르고원·힌두쿠시 일대를 여행한 것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려 때 정도전의 백두산 등정, 조선시대 이성계의 덕유산 등정, 안평대군의 북한산 등정 또한 기록에 남아 있다.
김일손의 지리산 등정(1480), 이이의 금강산(1560)과 청학동 소금강 기행(1569), 이명한(李明漢)·정곤수(鄭崑壽) 등의 청학동 소금강 등행(1640), 김창협(金昌協)의 금강산·설악산 등행 등의 기행록인 《동유기》, 정시한(丁時翰)의 《산중일기(1686)》, 송진명(宋眞明)의 《백두산지도(1730)》 제작, 남하정(南夏正)의 계룡산 등산(1731) 등은 하나의 등산사적인 기록이다.
그리고 박종(朴琮)의 《백두산 유록(1764)》에 있는 백두산 집단등정에 관한 기록이 있고, 특히 김정호(金正浩)의 1860년대 《대동여지도》 제작을 위한 백두산 등 전국각지의 산천답사는 학술목적의 등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 1886년에는 영국인 하즈반드 일행의 백두산 등정과 그 뒤, 미국·일본·러시아·영국인 등의 백두산 등정 기록이 있다.
근대의 등산
근대등산의 표본인 암벽등반은 임무(林茂)와 영국인 아처가 1926년 5월 북한산 인수봉을 최초로 등정함으로써 시작되어, 서울 근교 암벽을 차례로 등반하였으며 1930년대부터는 미등정의 산을 찾아 암벽등반과 겨울등산의 초등반이 개시되었다. 1927년에는 박석윤(朴錫胤)이 알프스 몽블랑 등산기를 발표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한국여성산악부가 설립되고 1931년에는 일본인을 중심으로 <조선산악회>가 창설되었다.
1934년 김정태·엄흥섭이 도봉산 만장봉을 초등하여 한국인의 독자적인 초등반이 시작되었으며, 1938년 말경부터 <백령회(회장 엄흥섭)>가 결성되면서 양두철·주형렬 등이 서울 근교 암벽에서 새로운 코스를 통한 초등에 성공하였고 1941년 12월부터 1942년 1월까지 마천령산맥을 종주하였다.
현대의 등반
8·15∼1960년
8·15 뒤 <한국산악회>가 설립되었다. 순수산악인들인 백령회원이 기반이 되었으나 주로 학술조사 목적의 등산이 성행하였으며, 산이 아닌 인근 도서가 주요 활동무대가 되었다. 6·25 뒤 대학산악부가 창설되었으며, 등정대상은 설악산으로 옮겨갔다. 한국산악회는 1955년 설악산 등반, 1956년과 1957년의 동계 한라산 등반을 하여 한국등반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학생산악운동으로는 1955년 서울문리대의 설악산 천불동 초등반, 1956년 서울공대의 지리산 전산종주가 있었다. 한편 각지방에 산악단체가 창설되었다.
1960∼1980년
1960년부터 한양공대 산악부가 도봉산 선인봉과 북한산 인수봉에서 새로운 코스를 개척하여 초등하면서 암벽등반이 성행하였고, 각종 산악단체가 설립되면서 이들 단체를 규합한 대한산악연맹이 1962년 창립되었고 등산장비도 국산으로 개량되어 새로운 코스가 개척되었다.
1962년에는 경희대학교의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Ⅱ봉(7751m) 등반을 시작으로 1970년 추렌히말 원정 등의 해외등반이 있었고, 특히 1977년 대학산악연맹 에베레스트원정대(대장 김영도)는 9월 15일 고상돈(高相敦)과 셰르파 펨바노루부가 에베레스트등정에 성공했으며, 1978년에는 한국산악회의 유동옥(兪東玉)과 셰르파 파상놀브가 안나푸르나 Ⅳ봉을 등정했고, 1979년에는 알래스카의 매킨리를 한국일보대·고령산악회대·고려대학교산악회 등 3개 대가 등정에 성공했다.
1980년 이후
해외원정이 수적으로 급증하고 국내에서는 동계 빙벽등반이 새로운 한계도전의 등산운동으로 등장하였다. 1980년 악우회를 비롯하여 4개 대가 알프스의 아이거 등 3대 북벽등정 성공, 동국대학교산악회는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무산소 등정하였고 서울문리대산악회는 안데스의 아콩카과를 등정하여 1980년부터 1985년까지 68개 대가 해외원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 인접국인 일본·타이완을 제외한 남아프리카·북아프리카·알프스·남극지역·북극지역 등에도 39개 대가 도전했다. 그 중에는 1981년 에코와 은벽 합동의 알프스 드류서벽 등정, 성균관대학교산악회의 안나푸르나 Ⅰ봉 남봉 등정도 있으며, 1982년 대전 자일클럽의 고준바캉 등정은 세계적인 초등기록이 되었고 남선우(南善佑)의 동계 푸모리초 등반은 한국 최초의 히말라야 동기 초등기록이 되었다.
1983년에는 허영호(許永浩)의 마나슬루 무산소단독초등, 남선우의 아마다브람에 동기 무산소단독초등이 있었으며, 1986년 울산대산련의 이규진 등이 히말출리 북봉에 세계초등반을 하였고 홍석하 등의 남극대는 최고봉 빈슨에 등정했다. 1986년 K2, 1987∼1988년 8611m의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 1990년 8068m의 가셔브롬 1봉, 1991년 8028m의 시샤팡마 남벽 등정, 1992년 낭가파르바트, 1993년에는 한국여성원정대를 비롯한 3개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등정, 그리고 고봉 중 미등봉이던 8047m의 브로드피크를 1995년 7월 12일 에스파냐의 합동원정대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또한 1995년 10월 2일 엄홍길이 8516m의 세계 4위봉 로체 등정에 성공하였다. 국내 등반에서는 1984년 토왕성 빙폭과 좌우암벽, 1985년 대승폭포 빙폭을 초등정하여 등반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난이도가 높은 볼더링과 하드프리등반이 시작되고 ...
이후 한국인 4명이 히말라야 14좌봉에 성공하게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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