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급 : 타의(他意)입산
공휴일이면 TV 리모컨을 쥐고 산다.
회사에서 결정된 산행에
어쩔수 없이 따라 나선다.
* 특징 : 멀쩡한 하늘에서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산행이 취소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놀부심보가 든다.
7급 : 증명(證明)입산
산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사진 찍으러 간다.
애써 걷기보다 물 좋고 경치 좋으면 장소
안가리고 스태플러 찍듯 '찰칵찰칵'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 특징 : 경관 좋은 곳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찍는 버릇이 있다. 그 사진을 산에 갔다
왔다는 증거로 활용한다.
6급 : 섭생(攝生)입산
오로지 먹으러 산에 간다.
배낭 가득 먹을거리를 챙기고 계곡을 찾아
음식을 탐한다.
* 특징 : 엄청 먹었는데도 음식의 절반
이상이 남아 다시 지고 내려온다.
그리고 '아, 나는 왜 요즘 이리 입맛이
없을까' 자신의 몸걱정을 한다.
5급 : 중도(中道)입산
산행을 하기는 하되 꼭 중도에서 하산한다.
그리고 제 다리 튼튼하지 못함을 탓하지
않고 꼭 뫼만 높다 탓한다.
* 특징: ' 뭐 꼭 정상을 올라야 하나.
올라가면 누가 밀가루 배급이라도 준단
말이냐'. 자기 합리화를 빠뜨리지 않는다.
4급 : 화초(花草)입산
줄곧 집에만 있다가 진달래, 철쭉 피는
춘삼월이나, 만산홍엽 불타는 가을이 되면
갑자기 산에 미친다.
* 특징 : 예쁜 꽃이나 단풍을 꼭 끼고
사진을 찍는다.
3급 : 음주(飮酒)입산
산을 좀 아는 인간이다. 산행을 마치면
꼭 하산주를 마셔야 산행이 완결됐다고
주장한다. 산을 열심히 찾는 이유가 성취감
뒤에 따르는 맛난 하산주 때문이라고 믿는다.
* 특징 : 술의 종류, 알콜도수, 값을 막론하고
그저 양만 많으면 된다는 두주불사형이 많다.
2급 : 선수(選手)입산
산을 마라톤 코스로 생각하고, 산을 몇 개
넘었다느니, 하루에 이렇게 많이 걸었다느니
하는 걸 무지하게 자랑한다. 그러나 달리기
시합에 나가면 기록은 신통치 않다.
* 특징 : 이 인간을 따라 나서면 대개
굶게 된다. 먹을 때도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해치우고 오로지 걷고 또 걷는다.
1급 : 무시(無時)입산
산행의 정신을 좀 아는 까닭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제사가 있으나
아이가 아프나, 계획한 산행은 꼭 한다.
* 특징 : 폭풍이 몰아쳐 '오늘 산행 취소지요?'
하고 물으면 '넌 비온다고 밥 안먹냐?'하며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단순무식이 돋보인다.
초단 : 야간(夜間)입산
시간이 없음을 한탄하며 주말은 물론,
퇴근 후 밤에라도 산에 오른다. 산에
가자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산병 초기증세가 나타난다.
* 특징 : 산꼭대기에 오르면 지가 무슨
늑대라고 "아~우~" 달을 보며 소리 지르는
해괴한 모습을 가끔 보인다.
2단 : 면벽(面壁)입산
바위타기를 즐겨서 틈도 없는 바위에
온몸을 비벼 넣으며 바위가 애인인 듯
안고 할퀴고 버팅기고 하면서, 바위를
상대로 온갖 퍼포먼스를 한다.
* 특징 : 이쯤 되면 대학 졸업 때까지 책
10 권도 못봤단 말이 실감난다.
3단 : 면빙(面氷)입산
날씨가 추워지기를 학수고대한다.
얼음도끼와 쇠발톱을 꺼내놓고 폭포가 얼어
붙기를 축원하다가, 결빙소식만 들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얼음에 몸을 던진다.
* 특징 : 빙판길에 가족이 넘어져 다쳐도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박박' 우긴다.
4단 : 합계(合計)입산
더 높고 어려운 산은 없나, 눈에 불을 켠다.
산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 외국 원서를 번역
하며 평소 안하던 공부를 하기도 한다.
* 특징 : 산병(山病)중증환자로서 '운수납자'
(雲水衲子:탁발승을 멋스럽게 부르는 말)
흉내를 내어 고행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5단 : 설산(雪山)입산
드디어 설산인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다.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
알 듯 모를 듯, 비장한 출사표를 내고 설산에
도전한다.
* 특징 : 설산으로 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돌아왔다는 소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6단 : 자아(自我)입산
드디어 산심을 깨닫고, 진정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마음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무조건 높고 험한 산에 취해 잊고 있던
'사람과 산'의 관계를 알게 된다
* 특징 :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가끔 받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집사람에게 찍혔던
'산에 대한 집념'이 비로소 결실을 거둔다.
7단 : 회귀(回歸)입산
산의 본질적 의미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있다는, 머리에 쥐나는 진리를 깨닫고,
다시 우리나라의 낮은 산을 찾게 된다.
* 특징 : '걷는 자 만이 오를 수 있다'는
지극히 쉬운 원리를 어렵게 깨우친 충격을
못이겨, '실실' 웃는 하회탈 모습으로
평소의 표정이 바뀐다.
8단 : 불문(不問)입산
'산 아래 산 없고 산 위에 산 없다' 라는
평등 산 사상의 경지에 이른다.
입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 특징 : 묻지마 관광처럼,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지 말라는 선문답을 하며
유유자적 산을 즐긴다.
9단 : 소산(小山)입산
작은 산도 엄청 크고 높게 보는 겸허한
안목이 생긴다. 작은 산을 즐겨 찾으나,
죽어도 '힘들어서 높은 산을 못 올라간다'
는 말은 안한다.
* 특징 :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과 비례
하여 입에 양기가 오른다. 남산 정도의
산행을 끝내고도, 하산주를 마실 때면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엄청 길어진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작은 산이 되어,
볕 잘 드는 산자락에 후배들의 전송을
받으며 산을 만들어,
영원히 산에 든다. 영 ^^원^^히 ^^ !
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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