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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등반(화엄사-노고단코스)

다우리산사랑 2007. 4. 27. 23:55
 

화엄사 계곡 코스 (노고단에 이르는 전통적인 길)

화엄사 ▶1.5㎞▶ 제3야영장 ▶4㎞▶ 중재 ▶1㎞▶ 집선대 ▶2.5㎞▶ 무넹기 ▶1㎞▶ 노고산장

 총거리 : 10Km
등정시간 : 3시간 40분
하산시간 : 2시간 20분
난이도 : 무난함

 


성삼재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엄사--노고단 코스는 지리산에서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등산로 가운데 하나였다. 예전 지리산 주릉종주를 계획한 사람들은 화엄사를 들머리로 하는 것이 불문률 이었고, 노고단까지만 오르는 산행객들도 많아 늘 붐비던 코스다. 지금도 산을 안다는 사람들은 모두 화엄사에서 종주를 시작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만 보고 내려오는 것은 산행이라기 보다 차라리 관광에 가까워 지리산을 왔다면 화엄사 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10대 사찰, 31본산의 하나인 화엄사가 자리잡고 있어 고찰을 둘러볼 수 있다.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의  집단시설 지구에서 화엄사를 거쳐 10 km의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길은 코재부근을 제외하곤 비교적 수월한 편이고  안내판과 안전시설도 충분하여  어느때나 안심하고 오를 수 있는 곳이다. 화엄사 코스는 비교적 등산로가 뚜렷하고 이정표도 많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다만 부속암자로 난 길과 희미한 옛 길 등이 얽혀 있기도 하므로 이 길로 빠지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집선대부터는 경사 급한 너덜지대를 올라야 하기 때문에  다소 힘들다.  속칭 '코재'라고 하여  등반하는 사람들의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는 곳이다. 무넹기는 노고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인위적으로 화엄사계곡으로 넘어가게 했다고 해서, 즉 물을 넘겼다는 뜻으로 무넹기라 부른다.  무넹기를 넘어 성삼재에서 올라오는 도로와 마주치는 곳에서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노고단 산장이 나온다.

 

서부 지리산의 관문

화엄사계곡 코스는 거찰 화엄사를 경유하여 계곡을 따라 노고단까지 10㎞나 이어진 대표적인 등산로이다. 지리산 종주산행을 할 때 반드시 포함되는 코스이며, 많은 짐을 메고 이 길을 먼저 오르기 때문에 산악인들에게는 힘든 산행 코스로 기억되기도 한다.
근래는 천은사~성삼재~달궁의 도로 개설과 함께 차량편으로 곧장 성삼재까지 올라 도로를 따라 노고단에 오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성삼재 종단도로 개통으로 화엄사계곡 코스는 옛 명성이나 번영(?)을 상당히 잃고 있는 셈이다. 실제 화엄사입구에서 무거운 짐을 메고 코재의 가파른 비탈길을 지나 무넹기에 올라선 등산객들은 성삼재까지 자동차로 올라온 뒤 나들이 하듯 노고단으로 발길을 옮기는 유산객들과 마주치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노고단을 걸어서오르는 것과 자동차를 타고 오르는 것은 천양지차가 있다. 어느 산이든 걸어서 올라야 등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또 화엄사계곡 코스가 지닌 독특한 경관도 누구나 한번은 찾아 보아야 한다.
이 코스의 산해 기점은 화엄사 집단시설지구가 있는 황전리이다. 구례읍에서는 군내버스로 10분만에 닿는다. 황전리 집단시설지구는 지리산에서 가장 정비가 잘돼있다. 상가와 식당, 콘도, 민박업소 등이 골고루 갖춰져 있고, 야영장도 넓게 조성돼 있다. 매표소 안쪽에는 지리산 유일의 프라자호텔도 있다.
원래 화엄사 여관촌은 사찰 입구의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아래편에 있었다. 그 여관촌을 헐고 현재는 '시의 동산'이라고 하여 시비(詩碑)들을 잔뜩 세워두었다. 여관촌은 매표소 바깥쪽의 집단시설지구로 끌어내고, 전에 없던 호텔과 콘도 건물은 매표소 안쪽 숲 속에 새로 건립하게 한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황전리의 버스 종점에서 매표소를 통과하여 사찰까지 도로를 따라가는 것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문화재 많은 화엄사

화엄사(華嚴寺)는 문화재가 많은 거찰로 찾는 사람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10대 사찰, 31본산이 하나인 이 사찰은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가 세웠으며,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다. 그 후 당나라에서 귀화한 의상(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을 두게 되면서부터 화엄사는 늘 많은 대중이 모이는 큰 절이 되었다.
화엄사는 정유재란(1579년) 때 왜병의 방화로 전소됐는데, 이때 장육전(각황전의 전신)과 그 벽에 화엄경 80권을 새긴 석경(石經)이 파괴되어버렸다.
30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화엄사를 1630년 벽암선사가 복구하고, 숙종 25년(1699년)에는 계파선사가 각황전을 재건하였다. 계파선사의 각황전 재건에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장육전이 불탄 뒤 그 재건에 고심하던 벽암스님은 계파스님에게 중건의 대업을 맡겼다. 계파스님은 현재의 대웅전에서 100명의 스님이 100일 기도를 올리게 하고, 그 자신은 중건불사의 성취를 위해 기도승을 시봉하는 공야주를 자원했다. 이윽고 100일 기도가 끝나는 회향일(廻向日)이 된 날, 한 노장스님이 말했다.
"간밤의 꿈에 하얀 노인(文殊大聖)이 나타나 장육전 중건을 위한 화주승(化主僧, 돈 모으는 스님)은 물 묻은 손으로 밀가루를 만져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은 사람으로 삼으라고 일러주셨소."
이에 따라 모든 스님이 밀가루를 만져본 결과 계파스님만이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았다.
계파스님은 밤새껏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정성껏 기도를 올리던 그의 앞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그대는 내일 아침 바로 화주를 위해 길을 떠나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시주를 권하라."
계파스님은 날이 밝기 무섭게 산문을 나섰다. 동구 쪽으로 내려가던 계파스님이 첫번째로 마주친 사름은 뜻밖에도 이 고을 일대를 떠돌아다니던 걸인 노파였다. 계파스님은 걸인 노파를 알고 있었으므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으나, '문수대성'의 가르침을 생각하고는 노파에게 간곡하게 시주하기를 청했다.
당장 자신이 먹을 쌀 한 톨 없는 걸인 노파는 스님의 시주 간청에 하늘만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이윽고 화엄사를 향해 합장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몸이 죽어 왕궁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루가리오니 문수대성은 가피(加被)를 내리소서."
걸인 노파는 그 말과 함께 그만 옆의 웅덩이에 몸은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 모양을 지켜본 계파스님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 길로 멀리 도망가 5~6년을 걸식을 하며 돌아다니다 한양까지 가게 되었다.
하루는 계파스님이 창덕궁 앞을 걸어가다 나이 어린 공주와 마주쳤다. 이 공주는 계파스님을 보자 무척 반가와하며 달려와 어릴 때부터 꼭 쥐고 있던 손을 펴보였다. 공주이 손에는 '장육전(丈六殿)'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공주가 스님을 만나 손바닥을 펴게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숙종은 곧 계파스님을 대궐로불러들였다. 숙종은 공주의 손바닥에 새겨진 글자의 내력을 스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왕은 크게 감명하여 곧 왕명으로 장육전 중건을 하게 했다.
마침내 장육전이 완공되자 계파스님은 이 건물 이름을 대왕을 깨우쳐 보전(寶殿)을 중건하였다고 하여 각황전(覺皇殿)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
이것이 각황전의 이름 내력이다. 이 건물은 국보 제67호로 지정받아 보호를 받고 있다. 또 이 건물 앞의 석등은 국보 제12호, 4사자 3층석탑은 국보 제35호이다. 화엄사에는 그 밖에도 많은 문화재가 있고, 수령 300여년의 올벚나무가 천연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 바로 앞에 서있는 남악사(南岳祠)는 원래 노고단에 있던 것으로 신라 때부터 나라에서 제사를 모셨던 유서 깊은 사당이다.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

노고단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화엄사 경내를 빠져나와 돌담을 끼고 얼마간 계곡을 따라가다 쇠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길을 따라 30분가량 걸어오르면 '서나무 야영장'으로 불리는 곳에 닿는다. 키가 유별나게 큰 나무 아래로 제2, 제3야영장이 조성돼 언제나 많은 캠프족이 들끓는 곳이다. 시원한 계류와 함께 자연속의 낭만을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식수대와 하장실 등이 잘 구비되어 있다.
야영장을 지난 뒤로는 시종 돌계단을 밟고 오르게 된다. 종래에는 야영장에서 길을 잘못들 염려도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돌계단길을 다듬어놓아 그런 염려가 없어졌다.
등산로의 지나친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이 돌계단이 등산객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하산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이어진 이 돌계단때문에 무릎 관절의 통증을 느끼만큼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돌계단길 주변은 단풍나무를 비롯한 활엽수가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있어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가을철에는 단풍의 현란한 빛깔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제3야영장에서 참샘, 돌거지, 국수등 따위의 안내판을 지나면 4㎞의 거리에 자그마한 등성이를 넘게 되는데 이곳이 중재이다. 앞으로 이곳에 50㎡규모의 휴게소가 들어설 것이란 소문도 있다.
중재를 지나면 다소 멀어졌던 계곡과 다시 가까이 접근된다. 이곳부터 투박한 돌길이 계속되며, 경사도 점차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길 오른편에 자그마한 규모의 폭포를 만나는데 집선대로서 식수보충과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집선대에서 눈썹바위에 이르는 약 2㎞는 그야말로 돌밭 천국이다. 그때문에 '덜거덕골'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경사 급한 너덜지대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라고 하여 등산객 사이에는 '코재'로 불린다. 앞 사람의 궁둥이가 코앞에 걸린다고 하여 혹자는 '궁둥이 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힘든 경사길을 오르면 편편하고 전망이 훌륭한 반석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가 눈썹바위이다. 휴식하기에 좋은 곳이나 일부 무지한 등산객들의 방뇨등으로 악취가 진동할 때가 많다. 이 눈썹바위에서 조금만 더 비탈길을 오르면 무넹기 고개에 닿는다. 노고단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심원계곡쪽으로 흐르게 돼 있다. 이 고개에서 인위적으로 도랑을 파서 물을 화엄사계곡 쪽으로 넘어가게 했다고 하여 '무넹기'라 부른다.
무넹기는 성삼재~노고단의 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넹기부터는 도로를 따라 노고 산장에 닿게 된다. 지계곡이 흘러내리는 곳에서 지름길(돌계단 길)도 나있다.

등산객보다 유산객이 많은 노고단

노고단은 성삼재 관광도로 개설 이래 등산객보다 유산객이 더 많이 몰려들어 갖가지 부작용을 빚고 있다. 관광객의 소음이 뒤덮고 있고, 쓰레기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성삼재~노고단은 불과 3㎞의 거리로 역시 도로로 연결돼 있다. 시멘트로 포장까지 해둔 이 도로에는 관리공단 소속 차량등이 드나들고 있는데, 때로는 택시도 오르내리는 것이 목격된다.
노고단 정상(1,506m)은 산장에서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이 정상에는 출입금지로 갈 수가 없다. 그 대신 야영장과 식수대 뒤편으로 노고단 고개로 올라가는 돌계단길이 만들어져 있다. 자연보호를 한다면서 길 좌우편은 철망으로 막아놓았다.
노고단 고개는 산장에서 10여분이면 오를 수 있다. 이 고개가 지리산 종주산행 루트가 통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반야봉이 지척에서 건너다 보이고, 서북능선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고개에선 멀리 천왕봉까지 바라다 보인다. 종주산행루트는 이 고개에서 노고단 북사면의 산비탈을 감돌아 임걸령쪽으로 이어진다.
노고단을 찾는 관광객들도 주로 이 고개까지 올라 기념 촬영을 하는 등 요란스럽게 떠들다가 되돌아간다.

출처 : 즐건^)^
글쓴이 : 즐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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