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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등반(중산리코스: 중산리-장터목산장,천왕봉)

다우리산사랑 2007. 4. 28. 00:02
칠선계곡 코스 ( 추성리 → 천왕봉 )

칠선계곡 코스 (수많은 소와 담 그리고 폭포가 엮어내는 지리산 계곡의 최고 걸작품)

추성리 ▶1.5㎞▶ 두지터 ▶2.5㎞▶ 선녀탕 ▶3.5㎞▶ 칠선폭포 ▶0.5㎞▶ 대륙폭포 ▶4㎞▶ 마폭포 ▶3㎞▶ 천왕봉

총거리 : 14Km
등정시간 : 7시간
하산시간 : 5시간
난이도 : 힘듬

 


지리산 10여개 계곡 중에서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코스이며,10경중에 포함되는 곳으로,겨울철,악천후시 금지코스이다.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칠선계곡은 지리10경의 하나로 수려한 계곡미를 자랑한다. 이 계곡은 우천 허만수선생이 신선되어 사라진 곳이다.
계곡 입구인 추성리에는 벽송사가 있고 옛 가락국의 식량창고였던 두지터 용소 선녀탕 청춘홀 칠선폭포 합수폭포(대륙폭포) 삼층폭포 마폭 등의 폭포와 소 담의 연속이다. 초암릉으로 불리는 국골과 칠선계곡 사이의 암릉은 바위봉의 연속으로 옛날 추성리사람들이 다닌 길의 흔적이 남아있다. 칠선계곡의 길이는 16Km가 넘는데 경치도 역시 최고다.

우리나라 3대 계곡이라면  보통 설악산 천불동 계곡, 한라산 탐라계곡 그리고 지리산 칠선계곡을 꼽는다.  이에 걸맞게 칠선계곡은 7개의 폭포와 수많은 소들이 모여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한다.  특히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지대로 부르는  마폭포와 천왕봉간의 울창한 수림은  가히 독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 칠선계곡 코스는  지리산계곡 등반로 중에서 가장 길고 험한 곳으로 유명한데 세심한 주의와 충분한 사전준비가 요구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 길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지만 종종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각 산악회에서 설치한 리본을 확인해가며 등반한다면 무난하다.  비오는 날에는 미끄러운 바위 비탈길과 계곡 건너는 데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것이다. 특히 여름 장마철에는 계곡내에 인공시설물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계곡을 건너는데 극히 위험함은 물론 겨울철에도 북향의 깊은 골짜기라서 적설령이 많고 기온이 급강하하여 등반의 최악조건을 형성한다.
추성리 삼거리에서  멀리 하봉과 국골의 깊은 골짜기를 잠시 올려다보고 용소와 선녀탕, 옥녀탕에 이르는 동안  거대한 소와 기묘한 암반위로 맑은 계류가 흐르는 계곡을 보며 계속 오르게 된다. 하늘이 그대로 잠긴 듯한 비선담을 거쳐 칠선폭포에 이르게 되고 다시 좌측으로 계곡을 건너게 되면 중봉과 하봉에서 흘러온 물과 칠선계곡 본류가 만나는, 폭포가 3개 정도 몰려 있는 일명 폭포수골에 이른다. 울창한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속에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두 줄기의 폭포수가 별천지를 이룬 마폭포에 이르면 '別有千地 非人間' 싯구 그대로이다.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 북변의 깊은 심부에 해당하는 이곳 합수골은 지리산의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곳에 해당된다.  통천문과 중봉-천왕봉 안부에서  각기 급하게 흘러 내려온 두 물줄기가 만나 비경을 이룬 마폭포 부근에는  야영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간 있다.  이곳의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워  한번쯤 합수대 위에서 야영하며 자연 그대로의 원음, 스테레오 포말음에 취해 신선의 경지를 맛보기를 권한다. 마폭포에서 천왕봉까지는 수직고도차 500여 m, 거리는 3 km에 달하는  경사급한 길이다. 도중에 식수가 없으므로 단단히 준비하고 어지간히 힘든 길이므로 쉬엄쉬엄 올라야 할 것이다.  마폭포에서 얼마 오르면  좌측으로 깊이 사태난 곳을 지나고  차츰 아름드리 거목 등 원시림이 가득한 숲길로 계속간다. 전나무, 잣나무는 물론 희귀수목 주목이 많이 눈에 띈다. 음침한 숲속에서는 온갖고산식물의 향긋한 내음이 코를 찌르고  바위와 나뭇가지에는 이끼가 두텁다. 경사 급한 길은 끝이 안 보이는데  천왕봉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경사 60-70도의 바위를 잠시 올라야 하고  어느덧 관목류가 무성해지면서 천왕봉 이정표가 나온다. 마폭포-천왕봉 구간은 경사가 심하고 체력소모가 가장 심한 곳이므로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적절한 휴식을 취하면서 올라가야 한다.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지대

칠선계곡은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지대로 불린다. 계곡이 깊고 험준하여 사람의 접근이 힘든 만큼 원시림지구가 보존될 수 있었다. 칠선계곡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힌다.
이 계곡은 천왕봉에서 북쪽의 추성리와 의탄마을까지 40여리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다. 근래 요소요소에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이정표를 세웠으나, 아직까지도 산악인들이 매단 리본이나 희미한 페인트 표시를 살펴보며 산행을 해야 한다. 또 인공시설물이 없기 때문에 비가 내릴 떄는 대단히 위험하다. 겨울철에는 북향의 깊은 골짜기에 적설량이 많고 기온이 급강화하므로 조난사고의 우려가 높다. 실제 이 계곡에선 매년 등반객의 조난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칠선계곡을 따라 등반을 할 때는 반드시 경험이 많은 사람과 동행을 하고, 날씨 등을 참작하여 산행 채비를 잘 갖추어야 한다.
마천에서 임천강을 따라오다 의평마을에서 의탄교를 건너면 추성리까지 스멘트도로가 열려 있다. 노선버스가 추성리까지 운행하지만, 시간이 안맞을 때는 걸어서 가더라도 20분이면 닿는다.
추성마을은 우난히 정자나무가 많다. 이 마을은 몇 해 전까지 전형적인 지리산 산간마을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근래 모두 민박집으로 개조하거나 채마밭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딴 얼굴이 되었다. 마지막 가게집에서 계곡을 건너간다. 갈림길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500m 가량 농수로를 따라가면 용소(龍沼)라 불리는 명당이 있다. 직사각형의 시퍼런 소로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가 우렁차고 길게 패인 암반의 모습이 절묘하다. 지난날에는 마을에 우환이 있을 때나 기우제 때 돼지를 제물로 바치며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근래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기도객들이 이곳 주변에 간이천막을 치고 치성을 드리느라 어지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칠선계곡 등반로는 용소 갈림길 이정표에서 곧장 남쪽의 고개마루로 이어진다. 논두렁 사잇길을 지나 정자나무가 넓게 그늘을 드리운 고개에 올라서면 칠선계곡 사면의 드넓은 분지가 내려다 보인다.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이다. 바로 건너편에 집 몇 채가 서있다. 두지터라 불리는 곳인데, 칠선휴게소 등에 민박이란 글자가 보인다. 칠선휴게소는 지리산중의 사설 '예술가의 집'으로 가꾸고 있어 한번 들러 살펴볼만한 것이 많다.
칠선휴게소 앞으로 지계곡이 흘러내리는데 이 지계곡으로 잘못 길을 들면 백무동으로 가게 된다.

두지터에는 옛 사연이

칠선계곡은 휴게소 앞의 지류를 건너 다시 만나게 되는데, 등산로는 칠선계곡 본류를 건너가 숲속으로 이어진다.
두지터란 이름은 이곳 지형이 쌀 뒤주를 닮았다고 하여 부른다고도 하나, 엣날 가락국 어느 임금이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이용한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추성리, 두지터, 얼음터, 국골 등 이 일대의 지명과 관련된 야사가 여러 가지 전해오고 잇는 것도 참고로 알아둘만 하다. '신동국여지승람' 함양군편에는 천왕봉 고성(古成)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일명 추성(萩城) 또는 박회성(朴回城)이라 하며, 의탄(義灘)에서 5,6 리 떨어졌는데, 마소가 갈 수 없는 곳이고, 안에는 창고터가 있다. 세상에서는 신라가 백제를 방어하던 곳이라 전한다.'
칠선계곡 지계곡인 국골 쪽 좌측 산등성이에는 약 1㎞에 이르는 석성의 흔적이 있다. 또 광점동 너머 깊숙한 골짜기에 있는 얼음터는 석빙고 역할을 했다는 말도 있으나, 이 모두는 그냥 전해오는 얘기일 뿐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두지터를 지나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옛 칠선동 마을터를 지난 뒤 한 숨 돌리 수 있는 편안한 길로 바뀌고 전망이 좋은 추성 망바위와 만난다. 다시 하늘을 가린 숲길을 한동안 오르내리며 걸어가면 계곡과 만나는데, 선녀탕이 반겨준다.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곳 선녀탕에서 목욕을 할 때 선녀들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곰이 선년들이 옷을 찾아 헤맬 때 사향노루가 자기의 뿔에 걸려 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주어 일곱 선녀는 무사히 하늘나라에 되돌아 갔다. 선년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를 칠선게곡으로 집단 이주시켜 살게하고, 곰은 이웃 국골로 내쫓아버렸다고 한다. 칠선계곡의 전설 가운데 하나이다.
선녀탕을 지나 좀 더 오른 곳에 수심 3∼4m, 넓이 100여평 남짓한 옥녀탕이 있는데, 칠선계곡에서 가장 넓고 빼어난 소(沼)이다. 이곳에는 넓적한 반석도 있어 휴식하기에 이상적이다.
옥녀탕 위로 기암과 옥류가 멋진 선경을 빚고 있는데, 때로는 아찔한 벼랑과 미끌미끌한 바위를 타고 오르는 길이 드릴감마저 넘치게 한다. 옛 목기막터가 있었다는 산죽밭을 지나면 조그만 바위굴을 볼 수 있다. 과거 목기를 다듬던 인부들이 임시 거소로 이용했던 '청춘홀'이다.

64년에 첫 등반로 개척

이 칠선계곡 등반로는 지난 1964년 11월 하순과 12월 초순에 걸쳐 부산의 산악인들과 학계 인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되었다. 김경렬(金敬烈), 성산(成山), 곽수웅(郭秀雄) 등 17명의 개척단이 이곳의 징담과 폭포들에 명명(命名)을 했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그대로 굳어져 있다.
'계곡의 23개 소(못) 가운데서 아래쪽에서 중간 지점에 위치한 몇몇은 옥녀탕(玉女湯), 군선담(群仙潭), 선녀탕(仙女湯) 등으로 명명했다. 6개의 폭포 가운데 높이 10m 쯤의 한 폭포는 부산일보의 이름을 따서 부일폭포로, 다음은 대륙산악회의 이름인 대륙폭포, 자일산악회, 동아대산악회 등 참가단체의 명칭을 달아 자일폭포, 동아폭포라 이름 붙였다.'(김경렬 '칠선계곡 등반로 개척 보고서')
이 등반대는 밀림지대가 형성된 1,500m 까지 목기 제작자들이 몰래 베어낸 최고 수령 300년생의 나무들, 그 둥치가 세 아름이 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우리들은 200∼300년의 나이테를 가진 나무들이 베어진 그루터기를 여남은 개나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나무를 잘라 만든 함지박이 쌓여 있는 목기 제작소가 있었다. 스무개 쯤의 함지박이 초벌갈이가 된 채 돌담 안에 포개져 있을 뿐, 아무런 기구도 눈에 띄지 않았따 작업을 하던 목기꾼들이 아마 연장을 챙겨 도망친 모양이다.'(위와 같은글)
전문산악인들이 칠선게곡 등반로 개척 산행에 나섰을 때, 산 아래 마을 주민들은 칠선계곡 중턱에 이미 목기 제작소까지 만들어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시대부터 은신처로

청춘홀부터 점차 경사가 심해지고, 길바닥이 험학한 돌밭의 연속이다. 돌밭길을 한참 오르다보면 칠선폭포 안내표지판이 서 있다. 칠선폭포에서 다시 10분 가량 올라 왼쪽으로 계곡을 건너는데, 이곳이 중봉과 하봉에서 흘러온 물과 칠선계곡 본류가 만나는 합수골이다. 이 일대는 폭포가 3개나 몰려있어 일명 폭포수골이라고도 한다.
이 함수골 일대는 지난날 도벌꾼들의 초막이 많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야영할 수 있는 공간이 더러 있다. 이곳에 산장을 세울 계획까지 마련된 적이 있다고는 하나, 반대 의견이 많아 흐지부지되었다.
칠선계곡은 산길이 워낙 험난하여 답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기상의 변화에 따른 조난사고의 위험도 높은 곳이므로, 이곳에 산장(대피소)을 건립하는 것은 일견 타당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칠선계곡만은 되도록 사람의 접근을 막아 자연상태 그대로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산악계와 학계에선 지배적인 만큼 산장 건립이란 생각지도 않는게 좋을 것 같다.
칠선계곡은 험난하고 깊숙한 계곡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등산로 개척 자체가 늦게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도피자나 동망자가 은둔하기 안성마춤인 곳이기도 했다. 일제시대는 징병이나 빙용을 피한 젊은이와 지식인 수백명이 은신했는데, 그 가운데 남한유격대 총책임자로 최후의 빨치산으로 불린 남도부(南道富, 본명 하준수)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일제의 만행에 맞서 처음에는 반외세(반외세)의 민족자주운동을 폈으나, 해방 이후의 정국혼란 속에 월북하여 강동정치학원 교관을 거쳐 빨치산 수괴가 되는 어둡고 처절한 길을 걷게 되었다.
칠선계곡은 또 일찍부터 세석고원을 지켰던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가 영생의 보금자리를 찾아 사라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칠선계곡의 어디에선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법계교 옆의 추모비문에도 칠선계곡 어디에선가 그 모습을 감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칠선계곡은 이 밖에도 여러가지 신비한 사연들을 담고 있는데, 그만큼 골짜기 구석구석이 아직도 원시세계의 자연상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대륙폭포, 3층폭포 등의 이정표를 지난 얼마 후부터 평범한 길이 계속되다가 마지막으로 마폭포의 비경과 만나게 된다. 봉천문 쪾과 중봉, 천왕봉 안부에서 흘러내린 두 갈래의 계곡물이 합쳐지는 곳에서 비경의 폭포가 걸려 있다.
그러나 이 마폭포에서 산길은 계곡과 완전 결별하며, 몹시 가파른 비탈을 타고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이 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수통에 물을 채워 마지막 등반구간을 답파할 채비를 해야 한다.

경사 60∼70 도 바위 사잇길

마폭포에서 천왕봉까지는 3㎞의 거리로 거의 일직선형의 산길에 표고차가 500m에 이르러 급경사를 이룬 곳이 많다. 심한 곳은 경사 60∼70 도의 바위 사이로 길이 이어져 있다. 그러나 여전히 원시림이 뒤덮고 있는데다 전나무, 잣나무 등의 침엽수에 희귀수목인 주목도 많아 청정한 느낌을 안겨 준다. 또한 음습한 토양에서 자라는 갖가지 고산식물들이 강렬한 방향을 내뿜기도 한다. 쓰러진 고목이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사태난 곳이 나타나 가슴을 아프게도 해준다. 이 길을 오를 때는 서두르지말고 천천히 휴식을 하면서 체력을 안배할 필요가 있다.
지난 64년의 칠선게곡 등반로 개척단은 바로 이 구간에서 큰 어려움에 봉착, 대원들이 뿔뿔이 분산되는 사태를 빚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전혀 인간의 발길이 지나가지 않은 경사 60도, 군데군데 산이 빠져 사태를 이루고 있다.'
정글 상태의 숲, 한 길이 넘는 눈 속을 피하여 때로는 사태진 곳을 올라야 했다. 표고 1,700m 쯤 올랐을 때 바람이 일고, 사태난 절벽에서 낙석(落石)이 쏟아졌다. 천왕봉 바로 밑인 것 같은데, 거기에는 여남은 개의 작은 봉우리들이 쭈볏쭈볏 솟아 앞을 막았다. 비와 눈에 산이 침식되어 사태난 곳이 려럿이다. 나는 예비답사 때 천왕봉에서 중간 지점을 가려 줄곧 1㎞ 쯤 내려왔던 어림짐작을 살려 그 곳을 돌파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무리였다. 제석봉 쪾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수해(樹海)를 헤쳐간다. 눈과 낙엽과 구상나무 군락지의 사이에 얽힌 잡목 떨기를 뚫고가는 동안, 베낭이 걸리고 옷이 찢어졌다. 꽁꽁 울어 잠깐이나마 멈취 쉬면 땅에 붙어버릴 것 같은 신발을 생각해서 부득이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이 가까와진 것 같아 이제 한숨 놓으려 하였지만 그대로 능선은 보이지 않았다. 제1, 제2의 등로반이 어디쯤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늦지 30분마다 갖기로한 무전기에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김경렬의 '칠선계곡 등반로 개척 보고서')
칠선게곡 루트는 이처럼 길고 험난하다. 칠선계곡 루트가 끝나는 곳이 곧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촌왕봉에 도착한 다음의 행선지 선택이다.
천왕봉과 가장 가까이 자리한 장터목 산장과 로타리 산장도 3㎞의 거리이며, 치밭목 산장은 무려 8㎞나 떨어져 있다. 천왕봉에서 마을까지 하산하려면 가장 가까운 거리인 중산리가 9㎞이며, 백무동은 12㎞이다.
칠선계곡 코스는 이처럼 천왕봉에 오른 뒤의 산행 시간 계획까지 면밀하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천왕봉에서 칠선계곡을 따라 추성리로 하산할 경우에도 하산 이전의 천왕봉 등정 계획 자체를 잘 세워야 할 것이다. 천왕봉 등정보다 칠선계곡을 따라가는 하산이 훨씬 더 힘이 들기 때문이다.
추성릭∼천왕봉은 14㎞로 등정 시간은 최소한 7시간, 하산 시간은 5시간 정도로 잡아야 한다.
또 이코스를 따라 산행할 사람은 누구나 일기예보를 잘 알아보아야 하고, 산행은 이른 아침에 시작해야 한다.

출처 : 즐건^)^
글쓴이 : 즐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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